철학으로의 귀의(歸依)
시속의 시 두 번째 이야기
삶
자아 성찰
존재
사회 비판
본질
수필
고등학생 시절 등산을 즐기시는 아버지를 따라 산을 탄 적이 몇 번 있다.
나도 그 당시 딱히 운동할 일도 없었기 때문에 주말에 시간을 내서 아버지의 등산길을 따라가기도 했었다.
등산을 가기 전 아버지는 꽤 많은 짐을 배낭에 싸신다.
당 떨어질 때를 대비해 양갱이나 카라멜 등 단 음식부터 물, 수건 등등 꽤나 묵직한 짐을 배낭에 싸고, 등산용 옷에 등산화에 등산 스틱, 게다가 겨울 산을 탈 땐 아이젠까지 배낭에 넣어놓고 오르신다.
처음에는 별 생각 없었지만, 북한산을 오르던 어느 날 북한산에서 잠옷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내려오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었다.
아버지도 다른 아저씨들처럼 유별나다는 생각부터 창피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던 것이다.
하루는 아버지와 산을 올라가던 중 아버지께서 내게 이런 말을 하셨다.
산을 오르는 것이 내려오는 것보다 힘들지만, 사람들은 내려오는 길에 넘어졌을 때 더 큰 사고를 당한다고. 그래서 내리막길일수록 한 발짝 한 발짝 조심히 발을 내디뎌야 한다고.
그리고 오르막이던 내리막이던 자만한 사람은 크게 다치게 된다고.
그리고는 등산이 인생과 같다고 이야기하셨다. ‘나는 이제 내리막을 걷고 있지만 넌 오르막을 올라가는 중이란다. 물론 네가 훨씬 더 힘들겠지만 단 한순간의 실수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건 나지.
그러니 힘들더라도 지금 걷고 있는 길을 한 발짝 한 발짝 신중하게 올라가보렴. 어느 길이 미끄러운지, 또 어느 길이 험한지를 하나하나 보고, 넘어지면서 올라가다보면 나중에 내려올 때 큰 사고를 피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올라가고 내려가는 그 어느 순간에도 항상 까불면 안 된다. 진지하지 못하면 크게 후회하는 일이 올 거야.’
그 말을 듣고 한없이 내가 어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안전을 지나치게 염려했던 것이 아니라 매사에 진지하게 임하셨던 것이다.
한없이 유별난 아버지라 생각했던 나는 내가 너무 자만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등산을 하는 아버지는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고 계셨다.
1년 동안 세상에 관심을 끊고 다시 세상에 관심을 가질 때 즈음 세상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도박판이 있었다.
비트코인이라는 가상화폐에 사람들은 돈을 넣고 경매인지 도박인지 정체성도 명확하지 않은 판에서 돈놀음을 하고 있었다.
애석하게도 친구들도 그 돈놀음에 빠져 있었다. 그냥 감에 의존해서 돈을 넣고 오르면 좋아하고 내려가면 오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 내 눈엔 도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4차 산업사회의 새로운 화폐네 블록체인이네 하는 허울 좋은 변명들은 나에겐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하는 신기루에 불가했다.
술을 마시며 나는 생각했다. 과연 비트코인이라는 것이 어떤 노동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내가 한 만큼 가져가려고 해야 한다.
내가 한 것 이상을 취하려 한다면 정말로 나쁜 사람이 되어있는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말이 머리에 스칠 때 나는 행동해야 했다.
올바르지 않은 것을 올바르지 않다고 입 밖으로 내야 했다. 그것이 스무 살 끝자락에 서있는 나에게 남아있는 정의였고, 용기였으며, 순수함이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친구를 설득했고 친구를 설득하는 데에 성공했다. 타협하지 않은 내 행위는 친구가 더 이상 돈을 던지는 행위를 막아낼 수 있었다.
뉴스를 보는데 한 대학생의 이야기가 나왔다. 비트코인에 많은 돈을 던지고 결국엔 강에 자신의 몸조차 던져버린 한 불쌍한 청춘의 이야기였다. 그 나쁜 사람의 이야기에 안타까움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자본주의의 정의는 노동가치에 대한 적절한 보상에 있다. 목적과 결과는 절대로 수단을 변호할 수 없다.
어떠한 목적이든, 또 결과가 어떻게 나왔던 적절하지 않은 노동에 대한 보상은 절대로 옹호되어서도, 옹호 될 수도 없다는 이야기이다.
스무 살 두 번째의 겨울에 마주한 나는 완벽한 자본주의형 인간이었다.
장석길
오늘을 살아내리라
오늘을 견뎌내리라
내일에 안주함 없이
비로소
오늘의 가치를 누릴 수 있도록
기필코
오늘을 살아내리라
장석길
실패를 기다린다
절망을 준비한다
행복을 좇는 작은 나에게
그것은 이윽고 다가와 버릴테니
앞서나가 기다린다
역경을 마중한다
고난이 길을 잃지 않고
나에게로 향할 수 있도록
장석길
날마다
피워져 올라가는 향연처럼
오늘의 족적을 띄워
저 하늘에 새겨본다
하늘아,
너는 알겠지
네게 서리어 있는
내 삶의 양태를
네게 새겨져 있는
내 삶의 형상을
장석길
배움의 길은 끝이 없고
참으로 험난하구나
배워서 익히려는 의지,
그 의지가 나를 움직이게 한다
지금 이 순간
나를 살아 숨쉬게 한다
아, 처절하고도 행복한
인고(忍苦)의 나날이여
김현우
참으로 마음 아픈 일이였다
어머니는 예전과 달리
늙어계셨다
자신의 모든 것을 올인 한 채
도박을 한 결과가 나였다
그저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들으시는 어머니에
눈물이 났다
내 모든 실패의 책임은
어머니가 지고 계신 것 같았다
김현우
아쿠아리스트들은
항상 너희의 건강을 위해
애쓰고 있어
식단조절도 하고 있고
다치면 치료도 해주지
이곳 아쿠아리움에서 너희는
잡아먹힐까봐 가슴 졸이지 않아도 돼
항상 안전할 거야
...정말 그렇게 생각해?
나의 말에 벨루가는 그렇게 대답했다
간결한 대답엔
더 이상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유유히 헤엄치는 수족관 벨루가는
하늘을 나는 것처럼 보였다
김현우
누군가
신나게 웃던 날이였고
누군가
서럽게 울던 날이였다
나는 그저
멍하게 응시하다
잠 속에 파묻힌
그런 날이였다
평소와 별반 다를 게 없는
그런 날이였다
김현우
교과서에 실린 작가님의 작품으로
저는 교과서적 정의를 배웠습니다
저는 오늘도 술을 마십니다
말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너무 한탄스럽습니다
정의는
상식적으로 옳은 행동이고
그 상식은 합리성으로 설명되며
그 상식을 지켜내는 것은 용기라고
그렇게 머리는 알고 있지만
전 오늘도
무기력하게 술잔을 비우며
그저 한없이 가벼운
남녀관계에 대한 노래에 귀를 기울입니다
겁 많은 제가 한없이 창피하고
고궁을 나오는 선생님의 모습이
그려지는 밤입니다
장석길
모순 속에 살아가는 존재,
나보다 열등한 작은 아이야
우린
완전한 하나이자, 완전한 둘로써
나는 너를, 너는 나를
부인하고, 또 부인하며
그렇게 살아왔구나
너와의 항상성을 이루는 그 날
너와의 평형을 이루는 그 날
마침내 소박한 나를 살게 되리라
장석길
꽃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
나를 바라보는 꽃의 마음을
아름답게 비추었던 어느 봄 날
꽃은 나에게 문득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꽃의 아름다움은
그보다 앞서 존재하는가
바라보는 이의 안에
이미 서리어 있었는가
장석길
저자는 누구인가
독자는 누구인가
오직 나를 위한 시
주체와 객체가 통합되는
그 차원에서의
‘것’을 쓴다
김현우
천사님
제 기도를 들어주세요
저는 천사님처럼
노래만 부르는, 웃어주는 존재로
늙고 싶어요
제발 그 토 나오는
기성세대가 되지 않게
도와주세요
구역질 나오는 꼰대짓에
역겹다 이야기할 수 있는
행동하는 청년이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김현우
고양이 하나를
알고 있다
그 누구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는
고양이를
목줄이 채워져
주인이 가자는데로
끌려다니는
무엇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벽을 오를 수 없다는 것을
겪어보기 이전에
목줄에 메어
벽이라는 환상에 묻혀사는
고양이를
김현우
그녀의 찡그린 얼굴을
그저 비웃을 수 만은 없는
많은 것을 짊어진 얼굴이었다
육체적 고통 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받아들이는 순간이 있다
무엇인가 정신적, 추상적 개념이
육체적 고통을 감수하게 하는
이성적 인간이었다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찡그린 그녀는
완벽한 인간이었다
김현우
내가 가슴에 묻은 아이가
나의 꿈을 헤집어 놓는다
나의 아이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가
못난 어미 때문에
하늘에 별이 된 날이 있다
부모는 무책임했고
나의 아이는
그런 부모를 등돌리고 맞이했다
자신의 운명을 겸허히 맞이했다
아가......
다음 생에 꼭
엄마 가슴에 묻지 않고
가슴으로 안아줄게
장석길
비우고 지워낸
젊은 날의 지혜
나로서 세상을 바라 볼 수 있는
내 안의 단촐함을 회복하자
내 앞에 펼쳐진
이 세상의 무게와 가치를
올곧이 가늠할 수 있도록
장석길
모름지기
더하는 일은 쉬우나
빼는 일은 무척이나 고되다
그것은 나의 치장과 장식을
벗겨내는 일이리라
다 빼보지 않고는
무언가 안다 할 수 없으며
무언가 보았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빼보아야 한다
기저에 놓인
드러냄의 가치를 보기 위해
장석길
비우기 위해 배운다
지우기 위해 익힌다
오직 무(無)를 향해 귀의(歸依)하는
앎의 여정을 위해
가늠할 수 없는 깊이와
측량할 수 없는 너비,
그리고 그 앞에 놓인
증명할 수 없는 세계를 좇기 위해